고양이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죠?

‘이 정도는 해줘야지.’
우리가 참 많이 쓰는 말입니다. 주말이니까 치맥 정돈 해줘야지. 월급날이니까 오마카세 한 번 가줘야지. 차는 이 정도는 몰아줘야지. 이 정도 집에는 살아줘야지. 끝도 없죠.

근데 이런 기준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건 맞을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들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마치 그걸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세팅되어 있는 기준들이 있어요. 어느샌가 우리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말이에요.

남들 하니까 하긴 하는데 진짜 좋은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내 취향도 모르겠고. SNS 때문에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의 자랑질을 보고나면 그 자체로 훌륭하고 치열한 내 삶이 초라하게 보이기도 해요.

리뷰나 별점만 보고 영화를 고르고 유행따라 음식을 먹고 소소한 즐거움 마저도 남을 따라가는 요즘. 가뜩이나 살 것, 먹을 것, 봐야할 것들은 많은데 시간과 돈은 없으니 실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인 것은 이해합니다. 다만 내가 온전히 만끽해야 할 개인의 취향이란 것이 보여주기 좋은 것에만 너무 치우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에게 고양이와 사는 사람은 고양이에게 이러한 삶의 방식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스스로의 선택권이 없는 고양이는 집사가 주는 대로 먹고 사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어찌보면 그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가득찬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양이는 집사의 거울

당신은 고양이를 ‘반려 동물’로 대하고 있나요?
뭐야? 당연한 걸 왜 물어? 당연히 ‘Yes’ 아니야?

제가 보기엔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양이를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사료를 끊임없이 찾아서 먹이고 몸에 좋다는 영양제들을 한가득 사서 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위치에 놓고 대하고 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죠. 우리와는 다른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잘 살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와 사는 그들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사랑을 쏟아붓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줬을 때 그것을 진정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받는 사람의 몫’입니다. 인터넷에 좋다고 소문난 고급(?) 사료, 남들이 다 먹인다는 영양제, 인스타그램에서 핫하니까 우리 고양이 붙들고 찍어야 되는 수많은 챌린지들.

정작 고양이는 즐겁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고양이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부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리고는 서운해 하죠.

온갖 좋은 건 다 사다 바쳤는데 먹지도 않아.
목욕도 자주 시켜주고 미용도 해주는데 점점 예민해지기만 해.
안고 영상 좀 찍으려니까 협조를 안 해줘.
요즘 좀 바빴다고 안 놀아줬더니 침대에 오줌이나 싸고 말이야.

이 모든 문제는 잘못된 의사소통에서 옵니다. 고양이가 꾸준히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들을 우리는 무시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싫다고 표현하는데 계속 무시당했을 때. 고양이는 이것을 ‘처벌’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소통 방식을 선택하는 겁니다. 물거나 펀치를 날리기도 하고 하악질을 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무의식중에 고양이에게 우리를 투영합니다. 이 정돈 너도 견뎌야지.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이렇게 해야지. 너는 못됐으니까 이렇게 행동하지. 너도 이렇게 해주면 좋은 거지? 그리고 딱 그 기준에 맞춰 고양이를 대합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이름표를 붙여 줍니다. ‘labeling’ 한다고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돼지같은 놈, 냥아치, 유난히 예민한 녀석, 뭐든 해줘야 하는 우리 아가 등 여러 가지 별명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여한 그 캐릭터에 따라 고양이의 모든 행동을 판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고양이를 그 자체로 존중해 줄 수 없습니다.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게 돼요. 그리고 그걸 모른채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질 않습니다. 고양이에게 미안함과 큰 후회를 안고 살아가야 할 거에요. 제가 그랬던 것 처럼요.


반려동물로 고양이를 대한다는 것

애완동물의 시대를 지나 반려동물이 된 고양이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그들과 반려하고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고양이를 우리와 동등하게 대한다는 건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노력입니다.
그들이 고양이로서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보살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의 범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고양이라는 동물로 온전히 대할 때 고양이들도 우리와 지내는 삶이 행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