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였다. 특히 아빠의 눈이 그랬다. 그 매서운 눈을 보자면 뭔가 잘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자꾸 눈을 피했고 그것 때문에 혼나기도 했다. 혼나기 싫어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에게 눈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갔다.
다른 이의 눈을 볼 때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도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감정을 다루는 것에 아직도 서툰 편인데 어렸을 때는 더 그랬다. 그러다 보니 뭔가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은 더 어색했다. 나는 내 감정을 남에게 들키기 싫어서 자꾸 눈을 피하고 다른 곳을 볼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읽었던 글에서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눈과 눈 사이를 보거나 인중을 응시하면 상대방이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로 눈을 마주치는 사람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상대의 미간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 따위’를 나누는 불편함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적당히 괜찮은 척하면 모든 것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상대를 똑바로 마주하지 않던 나는 나 자신마저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미간이나 인중을 보듯이 나를 흐린 초점으로 바라봤다. 마치 매직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좋은 건 부풀리고 나쁜 건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차이는 점점 커져갔다. 아무리 흐릿하게 보려고 해도 살면서 한 번씩은 내 모습에 초점이 맞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근사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기 어려웠고 남을 깎아내리는 건 쉬웠다. 나는 저것보다 훨씬 잘 하는데 왜 나를 몰라주지? 쟤는 왜 저것밖에 못하지? 화가 났다. 하지만 막상 그들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나를 남들에게 보여주기는 두렵고 불안했다.
인생이 무너져 내리려 할 때 심리 상담을 받았다. 관심은 받고 싶지만 껍데기 안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는 달팽이가 내 모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화가 가득했다. 감정을 감추는 계기가 된 그 일을 자꾸 마주해 보기로 했다. 그때의 그 아이를 만나야 했다. 나를 똑바로 봐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었다. 나와 눈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더 괴로웠다. 아빠보다 매서운 눈을 가진, 화가 잔뜩 난 나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왜 그동안 나를 봐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타인의 눈동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이유로 눈을 피할 때도 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눈에서 슬픔이 보일 때다. 꼭 내가 슬픈 것 같아서 보기가 힘들다. 원래 슬픔을 나눈다는 것이 그런 느낌일 테지만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다.
언젠가는 내 슬픔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게 꼭 다른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