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너를 혼내지 않을거야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까?’

제가 어려서부터 40평생 매일 해 온 생각입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놓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저도 제가 이런 걱정을 매 순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해지곤 합니다. 며칠 전에도 평소처럼 일어나서 씻는데 이유 없이 불안한 마음이 찾아오더군요.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또 불안하구나’ 정도로 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왜 불안할까?’

저는 ‘무언가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왜 불안한지 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혼나잖아’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부끄럽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애써 무시했습니다.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닐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게 맞는걸.

그런데 신기한 건 그 걸 받아들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이렇게 얘기해 주니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너를 혼내지 않을 거야.”


수치심 극복하기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파도를 극복하기 위해 어린 제가 내린 결정은 ‘감정 무시하기’였습니다. 내 감정이 크게 올라오려고 하면 그냥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 겁니다. 그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상관없이요.

아직도 주변 사람들이 종종 묻곤 합니다. “너 지금 기분 좋은 거 맞아?” 저는 정말 기쁘고 즐거운 상태인데 느껴지지 않나 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머네요.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부정당하거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수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게 더 나아가 ‘자기혐오’를 통해 ‘화’가 되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진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게 나를 기쁘게 하는지 모르고 살게 되죠.

일관성 없이 혼나거나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눈치를 많이 봅니다. 진짜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커다란 껍데기 안에 숨어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기 바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어렸을 때 갑자기 혼나거나 큰 소리가 나는 것에 많이 놀랐던 탓에 남의 기분을 살피는 버릇이 있습니다. 가급적 갈등을 피하려고 하고 내 감정이 커지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해왔습니다. 왠지 그러면 누군가에게 혼날 것 같았거든요. 무의식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내가 뭐라고’
‘아 나는 왜 이것도 제대로 못하지?’
‘내 기분보다는 저 사람 기분이 더 중요해’

이런 마음의 소리가 저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스스로를 향해 모진 말을 서슴없이 던지곤 했죠.
그러고는 괴로울 땐 술을 마셨습니다. 취한 나는 좀 그럴싸하거든요. 몽롱한 정신으로는 나 자신을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됐거든요. 하지만 술이 깨면 그런 수치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우울함과 불안함은 더 커졌고요.

괴로워하던 저는 저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죠.

“너는 뭘 좋아해?”
“지금 기분이 어때?”

저는 저와 너무 친하지 않았더라고요. 저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너는 얼마나 혼자 외로웠을까.


괜찮다고 말해주기

추하고 못난 나를 외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도 미칠 듯이 화가 날 수 있고 슬프기도 하고 주체할 수없이 기쁠 때도 있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합니다. 조금 못할 수도 있고 게을러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 있다고 매번 스스로에게 얘기해 줍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어쩌라고’
‘이만하면 잘하지’

평생 제 스스로한테 해준 적 없던 이런 말들을 자주 해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겁에 질려있던 어린 태협이가 이 말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너를 혼내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