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에 관하여

처음에는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는 저를 찾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느니 차라리 내가 속상하고 마는 게 편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40년을 살았습니다. 내 스스로의 감정은 무시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일을 해도 에너지 소모가 컸어요. 쉽게 지치고 나를 망가뜨리듯이 스트레스를 풀고요.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고작 그게 뭐가 힘들어. 왜 그것도 못해.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참고 하는데.’

이런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는 친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저의 오랜 습관이자 ‘방어 기제’였으니까요. 그렇게하면 누군가와 다투고 멀어질 일도 없고 내가 화를 내는 일도 없을 것이며 나를 욕하고 멀어지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꾸며낸 친절함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분이 좋고 컨디션이 좋을 땐 ‘좋은 사람’의 역할을 잘 해냈지만 피곤하고 몸이 좋지 않고 마음이 힘들 땐 속에 있는 화가 올라왔고 그것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꾹꾹 눌러왔던 화라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했고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이 오면 저도 모르게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말이 떨리기도 했어요. 부끄럽지만 진료를 하면서도 여러 번 겪기도 했고요.

저는 타인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내 감정과 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너무 서툴다보니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눈치를 살피고 멋대로 판단하는 것에 너무 익숙했습니다.
‘저 사람 표정을 보니 지금 내 말에 화가 난 것 같은데?’
‘내 말에 대답이 시원찮은 걸 보니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멋대로 넘겨 짚고 저 혼자 화가 끓어 오르는 일이 잦았죠. 그 사람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데도요.

그런데도 저는 제 방식의 ‘친절함’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 친절함을 받지 못하는 상대방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 때 내가 느끼는 화는 정당하다고 합리화하기도 했죠. 정말 큰 착각이었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앉아 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루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한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힘듦을 겪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멋대로 판단하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절한 ‘척’으로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절한 시늉은 상대방도 나에게 친절할 때에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무슨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여기까지 오시는 길이 쉽지 않았겠다.’
이런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에 대한 친절은 나 자신을 연민으로 대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니 자꾸 제 스스로를 야단치던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죠.


스스로 다정해야 친절할 수 있다

나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으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관성 있게 선하고 다정한 태도로 남을 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를 흔드는 상황과 감정 변화는 수시로 찾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 감정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저도 ‘진짜 친절함’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먼저라는 것을요.

보호자님들을 대할 때마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힘들게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고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오시며 겪으셨을 고생을 먼저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떠올립니다.

고양이도 소중하지만 고양이를 누구보다 아끼는 보호자님들의 마음도 귀합니다. 상황을 보호자님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함께 고민하면서 좋은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이 좋은 수의사가 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배워갑니다. 저의 작은 변화가 언젠가 보호자님들께 가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