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포기한다는 것에 대해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제가 해봤는데 안되더라고요. 교회도 안 다니면서 매일 기도하고 소망했는데 결국 안됐습니다. 그게 그냥 안되는 걸로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어린 저한테는 큰 상처였나 봅니다. 지금까지 아픈 걸 보면요. 그래서 저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어떤 것을 포기한다는 것. 그 과정에는 수많은 기대와 희망도 있고 그만큼의 슬픔과 좌절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만 남았을 때 우리는 포기합니다.

어떤 것을 포기했을 때 우리는 무기력을 느낍니다. 내가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다시 말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내가 말해서 뭐해 이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언젠가부터 속마음을 제대로 얘기하지 않게 됐습니다. 아니 말할 수 없게 됐습니다.

내 속마음을 제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얘기하기 어렵다 보니 남에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혼자 속상해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을 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매우 화가 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나를 인정해 주는 거야? 내가 이만큼 얘기했으면 내가 힘든지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상대방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기도 하죠. 속상하고 슬픈 일입니다.

내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해요. 내 주변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매사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던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괴로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좌절과 무기력,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안겨주니까요. 누군가는 이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

저는 아직도 저희 부모님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을 때 두렵습니다. 혹시 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무의식중에 훅 하고 지나가요. 특히나 저녁 시간이 넘어가면 더 받기가 힘듭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밤이 너무 무섭고 불안했거든요.

언젠가부터 새벽 4시 30분이 되면 항상 눈이 떠지고 불안합니다. 꼭 그때 처리할 수 없고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뭔가 꼭 까먹은 것 같고 뭔가 실수한 것 같고 그래요. 그러다가 잠이 들고 꿈을 꾸다가 일어납니다.

막상 진료를 시작하면 괜찮은데 그전에 여러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약제다 보니 제시간에 진료 끝낼 수 있겠지? 다음 진료가 빠듯한데 혹시 이 분이 지각하진 않겠지? 이 고양이 예민한데 오늘 검사할 수 있을까? 개원 초기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잘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의 부담감이 큽니다. 그 밑바탕에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도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기대’와 ‘희망’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습니다. 제가 더 나아질 수 있고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저질렀던 실수와 잘못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일 조그마한 계획을 세우고 뭔가를 성취하는 경험을 저에게 주고 있습니다. 매일 저의 하루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꼭 제 스스로에게 한 줄의 칭찬을 해줍니다.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저의 감정을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가 깊숙하게 처박아 놓고 꺼내보지 않은 저의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어 마주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글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고양이의 불안과 좌절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마음이 바뀌어 온전히 저에 대한 글로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고양이에 대한 글도 아닌데 끝까지 읽어주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종종 이렇게 제 이야기를 남겨보려 합니다.
글의 첫 문장을 제가 생각하는 대로 고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대로 말하고 움직여야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