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수의사 이야기

고양이랑 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들

검사 결과를 설명하려는데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긴장하고 계시네, 하는 생각에 별것 아니라는 말부터 서둘러 건넨다. 이내 밝아지는 목소리. 연락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그가 겪었을 걱정과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짠하다. 혹시나 건강 검진 결과가 나쁠까 봐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가, 별 이상 없이 올해도 잘 넘겼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는 보호자도 종종 있다. 그가 눈가를 훔치는 동안 나는 일부러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다. 예약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그를 괴롭게 했던 불안으로부터, 마침내 그가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토록 고양이랑 사는 우리는 자주 불안을 경험한다. 유독 아픈 것을 티 내지 않는 고양이들의 고통을 우리가 놓치게 될까 걱정하고, 그들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버리진 않을까 두렵다. 고양이와의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슬프다. 소중한 그들과의 단절은 끔찍한 고통이기에, 우리는 단지 그것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큰 아픔을 느낀다.

고양이와의 처음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완벽하게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다. 강의도 듣고 유튜브, 책으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역시 현실은 다르다. 모든 게 서툰 초보 집사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고양이의 어렸을 적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다 망치는 건 아닐까 두렵다. 고양이는 어쩜 이리도 우리를 걱정하게 만들까. 첫 만남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말이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안달한다. 커뮤니티를 뒤져 가장 몸에 좋다는 사료를 산다. 간식도 웬만하면 안 주려고 애쓴다. 그렇게 해서 우리 고양이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고양이랑 지내다 보면 사실 이런 것들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지만,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좋은 사료나 영양제로 만회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기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고양이 건강식을 찾아 헤맨다.

우리 고양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양이를 데려오고 푹 자본 게 언젠지. 늦은 귀가에 죄책감을 느끼고 긴 여행은 엄두도 못 내는, 그야말로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가 되어버린 내 삶이 팍팍하게 느껴진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뭐 좀 먹으려고 하면 울고 보채는 고양이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 나도 좀 쉬자고! 순간적으로 고양이가 미워진다. 하지만 난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사니까 그런 나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서러운 마음을 꾹 참고 츄르를 꺼낸다.


고양이는 우리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모든 게 서로 다른 이종 간의 만남이 항상 이상적이고 평온할 수만은 없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한 우리는 때때로 고양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들이 아플까 봐 불안해하고, 우리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을 예감할 때 깊은 슬픔에 빠진다.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더 괴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들과의 시간을 하루라도 더 늘리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제는 보내줘야 하지 않겠냐며 그들의 삶을 멋대로 줄이고 싶어 한다. 둘 중 어떤 게 진짜 고양이에게 좋은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고양이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고양이를 위한 선택을 했는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고양이 없이 공허한 나를 견딜 수 없어서인지, 고양이 때문에 귀찮고 힘든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인지 솔직해져야 한다. 진짜 나를 마주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 속에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또 고양이를 데려오고 고양이의 끝에 우리를 위한 결정을 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또 고양이를 들이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애초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고양이를 데려온다. 그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축복이다. 고양이와 살고 싶은 나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것을 실현시켜 준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건강한 반려인의 마음 자세다. 오히려 그 반대가 문제다. 내가 진짜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지, 고양이랑 사는 내가 좋은 건지, 고양이랑 살고 싶은 건지, 소유하고 싶은 건지, 고양이를 자랑하고 싶은 건지, 사랑하고 싶은 건지 구별하지 못할 때 불행은 시작된다. 고양이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평생 존중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이 고양이라는 것조차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게 어느 한쪽도 행복하지 않은 동거를 계속하게 된다.

고양이와의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 누구도 나를 채워줄 수 없으며,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우리도 고양이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느끼는 화나 슬픔 등의 불편한 감정이, 사실은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기를 바란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답이 있다. 항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 고양이들에게 매번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 감정은 고양이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고양이에게 짜증이 늘었다면 내가 요즘 유독 힘들진 않았는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울분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고양이를 보며 슬픈 마음이 올라온다면 내 안에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풀리지 않은 감정들은 최근의 것일 수도 있고, 내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가봐야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고양이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수시로 내 안을 들여다보자. 잘한 일은 칭찬해 주고, 비겁했던 나도 형편없었던 나도 안아주자. 슬픈 일이 있었다면 혼자 있을 때라도 펑펑 울자. 내가 내 옆에 있어주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며 감정을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관대해진다. 모두를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연민은 동정과 다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되면 우리 고양이의 마음도 보인다. 내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고양이를 그 자체로 존중하게 된다.

고양이와 살아오며 나 역시 다양한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랑이를 처음 데려왔을 땐 마치 자식을 얻은 것처럼 기뻤고, 매일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고 밤새 내 곁에 있어주는 랑이 덕분에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배웠다. 수의사인 주제에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집사인 내가 부끄러웠고, 목욕을 시키다가 손을 깨문 랑이를 심하게 혼낸 것에 후회했고, 결혼을 앞두고 어르신들의 반대로 랑이를 병원에 둔 채로 방치한 나 자신이 미웠다. 수의사면서 정작 우리 고양이 아픈 것은 몰랐던 무능한 나, 병원과 육아에 치이며 쌓인 화를 랑이에게 터뜨렸던 나, 아직도 종종 내 바쁨을 핑계로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나. 이런 형편없는 집사인 내 모습과 고양이를 치료하는 수의사인 나 사이의 괴리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직도 나는 고양이를 잘 모른다. 계속 그들에게 배울 뿐이다. 내가 얼마나 고양이를 잘 모르는지 자꾸 알려주는 그들 덕분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한다. 많은 사람들이 더 고양이를 알려고 노력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안타까워할 때도 있다.

사실 나도 고양이들에게 나를 투사하곤 한다. 병원에서 두려워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불안하고 겁 많은 아이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문제 행동으로 힘들어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불안으로 고통받았던 내가 보인다. 힘든 감정 때문에 그들의 삶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을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게 돕고 싶다. 그렇게 해서 고양이들이 보호자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해졌으면 좋겠다. 고양이와 사는 것이 고통보다는 행복이길 바란다. 그들이 부담감을 덜 가졌으면 좋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생명체와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데 최고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내려놔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잔잔한 바다에 튜브를 둥둥 띄워 놓고 그 위에서 물결에 몸을 맡기듯 고양이와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들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와의 삶을 즐겼으면 한다. 그 과정을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생각한다.

고양이와 살고 있는 사람도, 이미 떠나보낸 사람도 고양이를 마음에 영원히 품게 될 것이기에, 그들이 고양이와 함께 하며 공유하는 감정이 가급적 긍정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서로를 떠올릴 때마다 슬픔과 후회보다는 고마움과 따뜻함을 느꼈으면 한다. 우리의 만남이 오래도록 그렇게 기억되길 바란다.

*저의 브런치 스토리(고양이 수의사)에 올린 글을 옮겨 왔습니다.

김 태협

고양이만 진료하는 수의사. 11년째 고양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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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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