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를 보면 고양이들의 삶이 보인다. 진료실에서 그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고양이를 평소에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고 있음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보호자들도 있고, 어쩔 줄 몰라하며 고양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쩔쩔매는 보호자도 있다. 고양이의 모든 행동에 통제적인 부모 같은 모습을 보이는 보호자가 있는가 하면, 입만 열면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보호자도 있으며, 심지어 내가 보는 앞에서 고양이를 손으로 때리는 보호자도 있다. 이 중 어떤 보호자와 지내는 고양이가 행복할지 고르라면 누굴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더 가까운가?
다행히 우리 병원에 오는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집사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양이를 아끼고 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이 집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방식과 병원에서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고양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 건네는 눈빛에서 고양이들의 고된 삶이 얼핏 보인다. 물론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과정과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내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진료실에서 그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볼 뿐이다. 그때 느끼는 안 좋은 감정과 상관없이 나는 최선을 다해 상담하고 치료한다. 고양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까.
고양이를 향한 그들의 나쁜 말과 태도가 나를 향한 것 같아 화가 났던 적도 있다. 말 끝마다 고양이한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 고양이에게 성격이 지랄맞고 못돼 처먹었다는 둥 비난을 퍼붓는 사람, 가만히 잘 돌아다니고 편해 보이는 고양이에게 어유 불편해, 어유 싫어하며 자기의 부정적인 감정을 수시로 투사하는 사람은 아직도 편하지 않다. 나 역시도 그들에게 내 감정을 전이하기 때문에 그것이 불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조금이나마 타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지금은 한발 떨어져서 생각해 본다. 다 사연이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을 만나면 혼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고양이는 집에서 많이 혼나겠다.’
‘고양이가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는데?’
이렇게 고양이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이 분은 불안이 많으셔서 평소에 힘드실 것 같은데.’
‘과도하게 방어적이신 걸 보니 상처를 겪으셨을 수도 있겠다.’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설픈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고 나면 그들과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 보게 된다. 겁 많고 엄마랑 떨어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어린 시절의 나, 아빠가 너무 무서웠던 나, 약해 보이지 않으려 욕을 달고 살던 시절의 나, 용기 없고 비겁한 나, 고양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치던 나, 상대를 과도하게 통제하려고 했던 나,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기 바빴던 나. 내가 부정하기만 했던 나의 그림자들과 그들은 꼭 닮았다. 보호자에게 혼나는 고양이도, 고양이에게 욕을 하는 보호자들도 알고 보면 모두 나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 그림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내 몫이고 그걸로 나는 편해지겠지만, 그 보호자들과 함께 지내는 고양이들은 계속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그런 집사가 되지 않으려면, 혹은 이미 그런 집사라면 우리는 조금 더 고양이를 존중하고 추앙할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그렇게 해도 된다. 불공평하거나 비굴한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고양이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고양이는 나를 위로하기 위한 존재도 아니며 나를 다 받아줘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우리가 고양이를 부양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양이가 우리에게 부채 의식을 가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고양이는 우리의 자식도 아니며, 설령 그렇다고 한들 자식한테 그렇게 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고양이는 우리한테 ‘키워달라고’ 한 적이 없다. 단지 고양이랑 살고 싶었든, 아픈 고양이를 도와주고 싶었든, 고양이를 데려온 건 다 우리를 위한 일이었으며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편안함과 재미를 추구하는 시대에 육묘라는 불편함을 선택한 이상 우리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게 억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좀 더 자기 자신을 돌봤으면 좋겠다. 그게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고양이들에게 우리의 감정을 던지거나 떠넘기는 일을 되풀이할 것이다. 고양이는 우리를 괴롭히려고 작정하는 것도, 우리에게 복수하는 것도 불가능한 동물이다. 애꿎은 고양이에게 내 힘든 삶을 전가하지 말자. 인간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는 없으며 내가 아닌 타자는 나를 구해줄 수 없다.
생각해 보자. 고양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고양이에게 전적으로 기대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보호자가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