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야기

고양이 오버그루밍의 3가지 원인

다리나 배를 계속 핥아 털이 빠지는 ‘오버그루밍’ 고양이들이 있다. 핥는 행동뿐 아니라 뒷발로 얼굴, 귀, 목덜미 등을 세게 긁는 증상을 함께 보이는 고양이들도 많다. 심한 경우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기도 한다.

이럴 때 많은 보호자들은 링웜(곰팡이성 피부염)을 의심한다. 고양이가 털이 빠지고 가려워하며 딱지까지 생기는데 링웜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는 추측은 타당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려움증은 고양이 링웜의 대표 증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고양이들은 가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깊은 감염이나 이차 감염에 의한 것이지 링웜 자체의 증상은 아니다.

그럼 어떤 것 때문에 고양이들이 털이 빠질 정도로 핥고 가려워할까?


오버그루밍은 왜 할까?

1. 음식 알러지 & 아토피

고양이 오버그루밍의 76%가 음식 알러지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벼룩 알러지성 피부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벼룩 문제는 빼고 생각한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음식을 제외한 다른 것에 의한 알러지(non-food allergy)를 말한다. 따라서 거의 모든 원인이 알러지라는 얘기다. 특히 이 중에서도 음식 알러지의 비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고양이가 먹고 있는 것 중에서 원인을 먼저 찾아봐야 한다. 식이 교체가 없었다고 해도 늘 먹던 음식에 갑자기 스위치가 켜지기도 한다.

2. 스트레스, 강박

오버그루밍 고양이의 9% 정도가 강박에 해당한다. 정상적인 행동이 맥락 없이 과도하게 반복되는 것을 전위 행동이라고 하는데 주로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강박은 이 전위 행동이 강화 또는 악화되어 발생한다.

3. 통증

고양이는 어딘가가 아프면 그곳을 심하게 핥기도 한다. 따로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장이 좋지 않은 고양이들이 신장이 위치한 등허리 부위를 많이 핥아서 털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 오버그루밍의 해결 방법

1. 식이 제한

알러지 검사로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과 배제하는 것 모두 쉽지 않다. 모든 사료를 일일이 하나씩 바꿔 보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지연형 알러지라는 것이 있어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2-4주 뒤에 알러지 증상이 올라 올 수도 있어 더 어렵다.

그래서 단백질원(알러지원)을 작은 입자로 쪼개 놓은 가수 분해 사료를 단독으로 급여해 본다. 이 사료들은 알러지를 유발하는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단, 입으로 들어가는 다른 모든 음식을 중단해야 한다. 유산균을 비롯한 영양제도 끊어야 한다. 최소 2개월 이상 가수 분해 사료 단독 급여를 유지했을 때 오버그루밍이 개선된다면 음식 알러지로 진단할 수 있다.

가수분해 사료는 처방식이며 힐스의 ‘z/d’와 로얄캐닌의 ‘하이포 알러제닉’ (또는 ‘어날러제닉’)을 주로 사용한다. 만약 이 사료를 잘 안먹거나 먹으면서 설사가 심한 경우(삼투압 차이로 인한 수분 이동 때문) 중단해야 한다.

이 경우 널리 사용하지 않는 단백질원으로 만든 사료들(LID 또는 N&D 등)을 대안으로 먹여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멧돼지+석류, 오리+완두 등의 성분을 사용하는 식이다. 만약 운 나쁘게 이러한 성분에도 알러지를 가지고 있다면 전혀 효과가 없다.

2. 스테로이드

수의사의 진료 후 스테로이드를 처방 받는다. 장기간 고용량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왠만해서는 그렇게 위험한 약이 아니다. 스테로이드에 반응이 너무 좋은데도 부작용이 염려되는 상황에서는 수의사의 판단 하에 면역 억제제 등 다른 약으로 바꾸게 될 수도 있다.

3. 진통제

수의사의 판단하에 고양이의 상황에 맞는 진통제를 사용해 볼 수 있다. 진통제를 먹고 나서 오버그루밍이 크게 개선되더라도 스트레스 문제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4. 행동의학 진료

오버그루밍 문제로 행동의학 진료를 찾는 보호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피부 문제다. 알러지를 비롯한 신체 질환이 배제되거나 다른 치료에 효과가 없을 경우 진행해 볼 수 있다. 물론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인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는 고양이들도 있으니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행동의학 진료는 환경 개선과 행동 교정, 필요한 경우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대부분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이며 안전하다. 평생 약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5. 링웜 치료

드물긴 하지만 곰팡이성 피부염에서도 가려움증을 호소할 수 있다. 긁어서 생긴 상처가 아니라 탈모와 함께 각질이 먼저 생겼을 경우에 곰팡이 감염의 가능성이 있다.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는데 오히려 병변이 늘어날 경우에도 링웜을 강하게 의심해 볼 수 있다.

치료는 약용 샴푸, 연고, 소독약 등 외용제 보다도 내복약이 가장 효과가 좋다. 4주 이상 투약이 필요하니 배양 검사를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다. 배양 검사 결과와 관계 없이 수의사가 임상적으로 투약을 판단하기도 한다.


글을 마치며

고양이의 오버그루밍은 대부분 피부 문제다. 만약 얼굴 주변, 앞다리, 뒷다리, 배, 꼬리에 증상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등이나 어깨의 털을 뽑고 있다면 알러지 보다는 통증이나 스트레스, 강박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둘 중 어느쪽이든 확실한 건 고양이가 괴롭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반복 행동을 한다. 특히 오버그루밍은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평생 넥카라를 한채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심코 들여다 본 우리 고양이 배에 털이 없다면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그게 단지 살이 쪄서 배가 쓸려 빠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그곳을 반복해서 심하게 핥고 있다면 그건 고통스러운 상황임이 틀림없다.

고양이가 오버그루밍을 하고 있다면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고양이의 반복 행동은 그것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김 태협

고양이만 진료하는 수의사. 11년째 고양이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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